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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 이야기

현악기 대한 상식과 정보를 전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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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의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
작성자 [THE STRING]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08-11-30 08: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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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93

▶ 지오바니 첼리니 (14??-1528)

            조각가, 건축가. 뛰어난 루트와 비올 제작자.

▶ 티펜 브록커 Tieffen bruker (1514-1571)

        옛 바바리아 지역 후쎈이 출생지로 추정됨. 프랑스왕에 의해
 빠리로 초청되어 리용에서 시민권을 얻고 비올 제작자로 명성을
        쌓은 사람이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이 현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최초의 바이올린 제작자로 보기에는 좀 힘들지만 활동시기가 몇년
 앞선 것은 분명하다.

▶ 가스파로 다 살로 Gasparo da Salo

 이탈리아 태생.
        현재 바이올린 형태를 최초로 완성.
        스트라디바리와 과루네리우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Gasparo da salo의 바이올린은 소리 면에서 다소 어두운 듯 하지만
 오히려 애절한 아름다움이 깔려있고 힘과 뻗어 나가는 소리는
 오늘날에도 손색이 없다.
        그가 만든 비올라는 스트라디바리라 할지라도 미치지못한다고 한다.
 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총 다섯대가 현재 미국에 있으며, 그 중
        1570년경 제작된 것이 Hugh w. long씨가 소장하고 있다.
        이 바이올린을 1963년 루지에로 리차가 연주 했는데 명기를 비교
 연주한 곡 'The glory of cremona'라고 CD로 나와 있다.

▶ 안드레아 아마티 Andrea Amati

 크레모나파의 창시자.
 처음엔 구형 바이올린ㆍ비올라 등을 만들 었지만, 그후 서서히
 브레시아 파의 작품을 탐고하면서 바이올린의 패턴을 개량해 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뒤에 다른 사람들 에 의하여 상당히 서투른
 솜씨가 가해져 버렸기 때문에 융기ㆍ형ㆍ니스 등이 브레시아파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그래도 그 직립한 브레시아파 의 f자 구멍만은 남아 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는 프랑스의 샤를 9세를 위하여 수십 개의
 아름다운 장식을 단 악기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그가 만든 진짜 작품이 극히 조금밖 에 남아 있지 않다.
        아마티가 제작한 바이올린은 주로 풀싸이즈(Full Size) 이긴하지만  
 작은 것과 함께 만들어 놓았다. 작은 것은 길이가 13 1/2인치,
 큰것은 14인치가 있다. 작은 싸이즈는 1800년대까지도 여러 장인들
 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오늘날 Lady Size라고 물리우는 남성보다는
 손이 작은 여성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아미티의 바이올린은 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하지만 약한 게 결정적인
 흠이다. 단 연주용으로 악기의 가치가 있기보다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매우 높은 비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주로 보존하고 있다.

▶ 안토니오 아마티와 지롤라모 아마티(1)(1577~1628/1561~1630)

 안토니오와 지롤라모는 각각 안드레아의 장남과 차남이다.
        그들은 공동으로 작업을 하여 최초로 '아마티스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패턴 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부친 안드레아의 것을 따라
 만들어졌으며, 초기의 것이 후기의 것보다 융기가 크다.

        그들이 만든 악기의 수는 적지만 잘 보존되어 있다. 악기는
 대부분 형이 많고, 언저리를 깊게 파냄으로써 판의 융기를 높게
 보이게 했다. 뒤쪽은 대개 한 매의 판으로 만들어졌다.
   
        형 안토니오가 사망할때까지 이 두 형제가 함께 계속 작업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예를 들어 데 피코렐리는
 그것을 긍정하지만, 하트에 의하면 두 사람의 작풍은 분명히
 다르다고 하였다. 또한 힐은 1590~1630년 사이에만 이들이 함께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

          알렉산드르 스트라디바리와 안나모로니 사이의 아들.
          12세에 니콜로 아마티의 제자가되어 1667년까지는 그곳에서
 일한 것으로 보인다. 제자가 되는 사람은 자기들의 악기를
 만들기에 앞서 길드의 규칙에 따라 직인으로서의 일을 해야만했다.
 당시의 길드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어 후진 선택에 있어서도 규칙을
 지켜야 했으며 함부로 제자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승이
 제자를 받을 경우 두 사람은 공증인에게 가서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아마티가 사망한 이후 그 도구와 형 등 모든 것은 안토니오의
 소유물이 되었다. 그가 만든 초기작품에는 아마티의 상표가 붙었고,
        또 1666년경의 작품에는 모두'Nicolai Amatialumnus'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자신의 이름이 상표에 표기된 때는 1690년 이후부터이다.
  
          그의 악기 제작 연대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우선 제 1 기는 1666년부터 1685년경까지이다.
 이 시기의 작품은 아마티의 표준 크기 패턴과 많이 닮았고, 뒤에
 만들어진 작품에 비하여 융기가 많은 편 이다. 이들 악기는
 'Stradivarius amafise'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그후 계속 해서
 악기 개량에 힘썼다.

          1685~1695년경까지의 제2기에는 주로 'Long Pattern'으로 알려진
 아마티 형 과는 상이한 모양의 악기를 만들었다.
        이들 악기는 판의 융기가 훨씬 적어진 대신 컸으며, 동체의 길이나
 판의 각이 짧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담하고 큰 f자구멍
 등은 마치니의 영향을 생각하게 한다.

          그후 1695년경부터 그의 독자적인 모델의 황금 시대인 제3기에
 접어든다. 판의 두께나 윤곽의 선이 매우 정밀하며, 니스는
 색ㆍ질ㆍ투명감도 우수하고 소리도 아주 훌륭하다. 재료를 엄선
 하여 선택 하였고, 겉판은 나이테의 폭이 고른 것을 사용하였다.
       
          또한 악기 내부의 칸막이나 안 붙임은 포강의 제방에 있는 아주
 가벼운 버드나무가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의 악기는 줄감는 곳ㆍ
 지판ㆍ테일 피스 등의 부품을 떼면 260~275그램 정도밖에 안된다.

          이 시기에 제작된 그의 작품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여 그후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현악기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제자를 많이 두지 않았지만 그중에는 안토니오 갈리아노ㆍ
 로렌조ㆍ잔바티스타ㆍ 과다니니 등이 있다. 안토니 사후 그의 미완성
        작품은 그의 아들들과 카를로 베르곤지 등에 의하여 완성되어 스트라
 디바리의 상표를 붙였으며, 친필로 'Subdiscip- lia Stradivari'라고
 덧붙여 썼다.

          또한 그는 1667년에 프란체스카 훼라보시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그 중 프란체스코와 오모보노 둘만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스트라디바리는 92세까지 바이올린을 만들었으며 그 다음해에 서거
 하여 성 도메니코 사원에 묻혔다.

1679 헬리어(Hellier)
          상감 문양의 장식이 들어간 10개의 스트라디바리 작품 중 하나로
 1700년 이전에 만들어진 악기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크레모나의 스트라디바리 박물관을 찾아 이 악기의 디자인과
 스텐실 기술을 살펴보면 스트라디바리가 도안공으로서도 특별한
 재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헬리어는 전체적인 구상과
 제작 솜씨에 있어 역작임에는 틀림 없다. 악기 이름은 스트라디
 바리에게 이 악기를 처음 구입한 사무엘 헬리어 경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 악기는 19세기 까지 헬리어가에서 보관되다가 오스카 본디,
 조지 크롬프톤, 찰스 올드함 등 여러 수집가들의 손을 거친 뒤
 호팅거 콜렉션과 부를리처 사의 소유가 되었다.
          현재는 개인 소장가가 소유하고 있다.
          - <strad> 중에서-

1701 두쉬킨(Dushkin)

          새로운 세기가 열릴 때 만들어진 매력적인 이 악기는 메이플로
 만들어진 뒤판 중앙에 옹이가 선명하게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의 작품 중에서는 간혹 이처럼 특이한 메이플이
 발견된다.

          헤르베르트 굿카인드는 자신의 저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 도해>에서 사무엘 두쉬킨에 대해 언급하며 이 악기를
 '두쉬킨'이라 기록했다. 두쉬킨은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와
 친밀하게 지내며 활동했던 인물이다.
       
          힐즈는 1929년에 이 악기를 런던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알버트
 샌들러에게 팔았다. 1946년에는 필드가 루돌프 부를리처사로부터
        이를 구입함으로써 이 악기는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후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알란 자페가 1988년 필라델피아의
 울리엄 뫼니크 & 선사로부터 이 악기를 구입했으며 그는 1994년에
 이것을 바인 앤 푸시에 위탁했다.
         
          결국 이 바이올린은 예술가를 후원하고 있는 밀워키의
 안젤라 존스톤이 소유하게 되었다. '두쉬킨'은 '스트라디바리
 협회'가 특별히 재능있는 연주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관리하는
 악기들 중 하나로, 한때 시카고 태생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상미가 사용했다.
          - <strad> 중에서-
1709 킹 맥시밀리안 (King Maximilian)

          1737년에 스트라디바리가 세상을 떠나자 '킹 맥시밀리안'은
 파올로 스트라디바리는 펙박스 안에 'PS'란 라벨을 붙였는데,
        이 악기는 오리지널 넥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스트라디바리로,
 이 라벨을 지금도 확인해볼 수가 있다. '킹 맥시밀리안'의
 뒤판은 스트라디바리가 이 시기에 즐겨 사용했던 특별히
 아름다운 나무로 만들어졌다.

          1806년에 이 악기를 구입한 바바리아의 킹 맥시밀리안
 조셉은 스크롤 뒷부분에 작은 두 개의 원을 표시하고 뒤판
 위 끝 부분에 모노그램(이름 첫 글자를 도안화하여 짜맞춘
 글자)을 만들어 자신의 소유임을 밝혔다 (1702년산 같은
 이름의 스트라디바리에도 그의 브랜드 표식이 있다.)

          1827에는 하노버의 베른하르트 하우즈만이 '킹 맥시밀리안'
 을 구입했다. 이후의 공식 소유자는 1927년에 이 악기를 구입
 한 하노버의 프리츠 하르트만이었으나 소유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베쿠젠의 쿠흐네에게로 넘어갔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리더인 미셀 슈발베가 수년간 연주했던 
 '킹 맥시미리안'은 최근, 어느 유명 개인 소장가의 소장품이
 되었다.
          - <strad>중에서-

1710 비외탕, 하우저 (Vieuxtemps, Hauser)
         
          '비외탕, 하우저'는 스트라디바리가 고안하여 말년까지
 그 방식을 고수한 큰 형태의 바이올린이다.
          그보다 앞선 활동한 크레모나의 장인들은 이런 비율의
 바이올린 제작을 시도한 바 없었으므로 스트라디바리의
 이 '그랜드 패턴'은 그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840년대에 파리에 있는 뷔욤의 작업장에서 일했던 악기
 제작자 게오르그 게뮌더는 이 바이올린을 '엑스 뷔에탕,
 하우저'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악기의 소유자가
 비외탕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크로이처의 제자로 비르투오조이며 작곡가였던 미스카
 하우저도 이 바이올린을 소유했다. 그가 사망하자 이것은
 동생인 이시도르에게 넘어갔다.

          1889년, 게뮌더는 이시도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악기의
 G현 톤에 비견될만한 다른 진품 스트라디바리를 찾을수 없다."
 고 적고 있다.
          - <strad> 중에서-

1727 '뒤퐁'(Dupont)

          1720년대 후반,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은 그 양식이나
 재료, 바니쉬에 있어 보다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
          1727년에는 1710년대의 불꽃과도 같은 화려한 메이플이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으나 '뒤퐁'의 경우와, '뒤퐁'과 같은
        해에 만들어진 '비너스'의 경우는 뒤판이 꽃같이 붉고 갈색의
 바니쉬가 입혀져 있는 최고의 품질인 멋진 메이플로 만들어
 졌다.
       
   '뒤퐁'은 대부분 프랑스에 머물러 있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소유자는 제너럴 뒤퐁이다. 이어 파리의 모렐이 소유
 하게 되는 1933년까지는 누가 소장하고 있었는지가 밝혀져
 있지 않다.

          이후 '뒤퐁'은 파리의 로느와 백작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는 이 악기를 1933년까지 지니고 있었다. 로느와는 이
 바이올린을 벨기에의 아르투르 그뤼미오에게 빌려주었는데
 그뤼미오는 오랫동안 이 악기로 수많은 연주회와 녹음을 했다.

          1993년에 런던의 바이올린 딜러인 피터 비둘프가 파리에서
 이 악기를 구입한 뒤 얼마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건너간 이
 악기는 바인 앤 푸시를 통해 현 소유자인 파트리시아
 코제레프스키와 리차드 보고몰니에게 팔렸다.
          - <strad> 중에서-

1734 '빌르모뜨'(Willemotte)

          1730년대 초반에 스트라디바리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볼드'(bold)를 유행시켰다. 이 타입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빌르모뜨'는 큰 아칭, 중량감 있는 에지, 만곡이 큰 사운드
 홀의 아래 윙 등 톤에서 뿐 아니라 외관에서도 남성적인
 건장미를 느끼게 한다.

          샤를르 빌르모뜨가 악기 평가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전문
 감정가였다는 사실은 알프레드 힐의 한 서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빌르모뜨는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나
 연주가로서는 활동하지 않았다. 1734년산 스트라디바리를
 파리의 '강 & 베르나르델'로부터 1886년에 구입한 그는,
 그 당시 이미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을 5개 이상  
 소유하고 있었다.

          이후 여러 딜러와 음악가들의 손을 거친 '빌르모뜨'는
 1983년에 바인 앤 푸시를 통해 미국인 의사 앨버트
 오버하우저에게 팔렸으며, 오버하우저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이 사위에게 이 악기를 연주케 했다. 5년 뒤
 이 바이올린은 바인 앤 푸시에 위탁되어 현 소유자인 뉴욕의
 마크 프타슨에게로 넘어갔다.
          - <strad>  중에서-

1736 '문츠'(Muntz)

          스트라디바리가 92세 되던 해에 만든 '문츠'는 그의 말기에
 제작된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의 전생애
 에 걸쳐서도 최고라고 할 만한 악기다.

          '문츠'는 제작 당시부터 현재에 이른 경로를 정확히 밝힐수
 없는 몇 안 되는 바이올린 중 하나다. 스트라디바리의 연장과
 얼마 남지 않은 악기들은 1775년,아들 파올로 스트라디바리에
 의해  최고의  바이올린  수집가이며  감정가인  살라부에의
 코지오 백작에게 팔렸다.

          코지오 백작은  스트라디바리가 바이올린의 옆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나무  몰드에 대해  '1736년산 바이올린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기록했다. 이 글은 크레모나에 있는 스트라디
 바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코지오 백작에게서 이 악기를
 구입한 루이지 타리시오는 이를 1831년 파리의 강(Gand)에게
 팔았고, 그는 이를 1862년  앤트워프의 수집가 빌르모뜨에게
 팔았다.
          이어 문츠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1902에 출판된 힐즈의
 <스트라디바리>에는 이 바이올린의 이름이 '문츠'라고 기록돼
        있다. 최근, 이 보물은 일본 음악 재단의 소유가 되었다.
          - <strad> 중에서-

1772 '주피터'(Jupiter)

          '주피터'는 큰 형태로 만들어진 악기들 중 매우 잘 보존된
 악기다.뒤판은 두쪽의 메이플로 이루어졌으며 모양도 예쁘다.

          '주피터'라는 이름은 존 하르트로부터 이 악기를 구입한
 영국의 수집가 제임스 고딩이 지은 것이다. 1857년, 뷔욤이
 잔제 자작을 대동하고 런던의 고딩 컬렉션 경매장을 찾았는데
 경매 다음날 잔제는 이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1886년에는 캉포젤리스 공작이 이것을 사들였으며 이후로
 몇몇 사람의 손을 거친 뒤 1905년에 아마추어 첼리스트인
 핍스의 부인이 힐스로부터 이 바이올린을 구입해서 남편에게
 선물했다. 핍스는 같은 해에 스트라디바리 첼로 '뒤포르'를
 구입하기도 했다.

          '주피터'는 오랫동안  핍스 가에  머무르다가  1971년에
 캘리포니아의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 이며  수집가인
 에프레임  잉글먼에게  팔렸으며  몇 년  전에는  일본의
 하야시바라 재단에 판매되었다.
          하야시바라 재단은 이 악기를 미도리와 같은 자국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입했다.
          - <strad> 중에서-

1731, ex Garcin

          Antonio Stradivari Cremona, 1731, ex Garcin
 스트라디바리의 현재 시가는 1밀리온에서 7밀리온 (13억에서
        100억)까지 이르는 것이있다. 현존하는 바이올린으로서는
 최고의 명기이다.

▶ 과르네리 델 제수 Guarneri Del Gesu

            16세때 니콜라 아마티의 제자가 되어 아마티 밑에서
 11년간 수업한 후 결혼해서 스승의 집 가까이에 작업장을
 열었다. 약 4년간 아마티형의 개량에 열중하며 끊임없이 힘쓴
 점에서 그는 스트라디바리와 마찬가지였다.
           
            현재 남아있는 악기는 모두 아주 뛰어난 것으로서
 아마티의 악기와는 달리 앞판의 융기가 낮고 f-자 구멍의
 폭이 넓다. 그 이유는 과르네리 델 제수는 남이 만든 악기를
 모방하려 하지 않고 남 몰래 자기 자신의 것을 만드는데 노력
 했으며 그 때문에 상당히 색다른 시도를 하고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마티 시대의 볼록한 앞뒷면을 평평하게 하고 뒷판을
 두 판으로 붙여 만듦으로해서 소리의 울림에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그의 황금시기인 1729년부터 1743년에 그의 생애에 가장
 좋은 바이올린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이 시기는 살인죄로
        무초를 당해 십수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이 창작기는
 그 후 10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시기의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의 가장 좋은 악기와 필적
 할 만한 것인데,  특히  옆판의 각이나  f-자 구멍의 조각도
 그 특유의 대담한 조각을 했다. 또 호박색 바탕에 투명한
 적색을 바른 바니쉬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광채를 발하고
 있다. 카를로 베르곤치는 이 바니쉬를 바다 위에 비치는
 찬란한 석양에 비유할 정도이다.

 그리고, 파가니니가 그의 명기 카논을 가지고 승리를 거둔 후
 비로소 연주가들은 과르네리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다투어
 과르네리 델 제수의 소유자가 되려 했다.

1734 '르 뷔올롱 뒤 디아블르' (La Violin du Diable)
           
            '르 비올롱 뒤 디아블르'(악마의 바이올린)라는 이름은
 이 악기를 연주했던 파리의 안무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르뛰르 생 레옹의 동명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디아블르'라는 불길한 느낌의 이름과는 달리 이 악기는
 비교적 평온한 삶을 이어왔으며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보관이
 잘 되어 있다. 날카로운 외관과 붉은 색이 도는 풍부한 느낌의
 바니쉬는 이 악기가 조심스럽게 다루어졌으며 그다지 많이
 연주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바이올린은 19세기 파리의 악기 제작자 장 바띠스뜨
 뷔욤이 루이지 타리시오로부터 구입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어 리차드 베네트가 소유했다가 1920년대에 '힐 앤 선즈'의
 소유가 되었으며 몇 년 뒤 프랑스의 아마추어 음악가인
 피에르 라꽁브의 소유가 되어 1970년대까지 잘 보관되었다.

            현재 이 악기는 이 걸작을 의심의 여지 없이 계속 보관
 할만한 어느 유명 수집가가 소유하고 있다.    
            - <strad> 중에서-

1735 '플로우덴'(Plowden)

            붉은 오렌지 빛을 띤 바니쉬와 아름다운 나무가 사용된
 '플로우덴'을 이보다 1년 전후로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 두 대-1734년산 '윌레모트', 1736년산 '문츠'-와
 비교해 보면, 분명 스트라디바리는 오랜 경력의 끝에 와있는
        반면 델 제수는 상승하는 중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플로우덴'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를 '데그빌르'와
 함께 했다. 19세기 영국의 딜러 존 하르트는 이 두 대의 악기
 를 수집가 플로우덴에게 팔았다.
            한때 이 두 악기를 본 뷔욤은 플로우덴에게 "이 악기들에
 필적할만한 악기를 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29년, 미국에 도착한 이 바이올린은 코네티컷의 존 로버츠
 에게 팔렸으며 이어 1944년에는 뉴욕의 윌리엄 로젠왈드의
        소유가 되었다. 이 악기를 보관해오던 그의 가족은 몇 년전
 영국의 'J. & A. 비어'를 통해 뉴욕의 마크 프타슨에게
        이를 팔았다.

            이로써 '플로우덴'은 역시 프타슨이 소유하고 있던
 '데그빌르'와 다시 한번 재회하게 되었다.
            - <strad> 중에서-

1735 '데그빌르'(D' Egville)

            '데그빌르'는 '플로우덴', '킹 조셉'과 더불어 델 제수의
 최고 전성기 작품이다. 화려한 무늬의 메이플, 붉은 오렌지
        빛이 도는 바니쉬에 드리워진 그림 같이 화려하게 닳은 무늬,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마감질 등은 '데그빌르'를 세계 최고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바이올린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영국의 유명한 수집가 플로우덴은 1855년에 런던의 딜러
 존 하트로부터 이를 구입했다.플로우덴은 이외에도 '킹 조셉',
 '플로우덴', '올 불' 등의 과르네리 바이올린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1960년에는 루츠가 이 악기를 구입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간직했다. 루츠는 이 바이올린을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에게 빌려주었는데 그는 "데그빌르는 현존하는
 바이올린 중 최고의 음색을 지녔다."라고 말한 바 있다.

            몇 년 전 이 악기는 자끄 프랑세를 통해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수집가인 마크 프타슨에게 팔린 후
 프타슨의 소장품인 '플로우덴'과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이어 최근에는 데이비드 풀톤이 이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 <strad> 중에서-

1735 '진하우저'(Sennhauser)

            '진하우저'의 뒤판 메이플은 슬랩 컷으로 제작되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과르네리 델 제수의 작품은
 10개 이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결의 불꽃 무늬는
 극적인 모양을 연출한다.
            흥미롭게도 '킹 조셉'이나 '스턴, 파네트', '진하우저'는
 모두 이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바이올린인데, 재료도 같은
        나무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하우저'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924년에 슈투트가르트의 함마사는 이것을 디르크센 아돌프
 진하우저에게 팔았다. 1931년부터 루돌프 부를리처사가
 이 악기를 소유했으며 1944년에는 에른스트 두폰트 메이로위츠
 가 이를 구입했다.

            이후 시카고 인근에 살던 열성적인 아마추어 조셉
 피쇼프가 이악기를 구해 몇 년동안 즐겼다. 1989년에 피쇼프는
 이 악기를 현 소유자에게 팔았으며
            현 소유자는 이를 스트라디바리 협회를 통해 젊은 연주자
 들에게 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몇 년간 '진하우저'를 연주한 이들로는 레일라
 조세포비츠, 권윤경, 장영주 등이 있다.
          - <strad> 중에서-

1737 '킹 조셉'(King Joseph)

            '킹 조셉'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중 하나다.
 장미빛을 띤 오렌지색의, 최고 품질의 바니쉬는 슬랩 컵한
 뒤판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외관은 균형이 잘 맞고 조화로우며 우아하기까지 하다.
 '킹 조셉'은 고딩 컬렉션에 속하는 것으로 1857년 크리스티
 에서 경매에 붙여졌는데, 당시 '킹'이라 불리는 또 다른
 작품이 같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딜러인 존하르트는 '킹 조셉'을
 구입해서 사무엘 애플바이에게, 이어 플로우덴에게 팔았으며
 이후 1868년에는 존 워터스라는 미국인에게 팔았다. 이로써
 '킹 조셉'은 첫 번째로 미국에 들어간 최고의 과르네리가
 되었다.

            1903년에는 뉴욕의 헤브마이어가 라이온 앤 힐리로부터
 '킹 조셉'을 구입했다. 헤브마이어 일가는 이 바이올린을 여러
         세대를 거치며 보관해오다가 이차크 펄만과 같은 연주자들에게
  대여해 주었다.

            '킹 조셉'은 1978년, 바인 앤 푸시를 통해 이 시대의
 선두적인 수집가 이며 현 소유자인 홍콩의 신에게 팔렸다.
            - <strad> 중에서-

1739 '코르차크'(Kortschak)

            '코르차크'는 1739년산으로 추정되는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델 제수가 왕성한 창조력을 보일때 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운드 홀에서는 날카로운 안식이, 바니쉬에서
 는 화려함이 느껴진다.

            오스트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휴고 코르차크가 스페인을
 여행하던 중 이 바이올린을 처음 구입한 관계로, 이 악기는
 가끔 '스페인 조셉'이라고도 불렸다. 루돌프 부를리처 사는
 1923년에 이 악기를 존 로버츠에게 팔았으나 1931년에
 <힐 과르네리 북>이 출판되었을 때 다시 한번 이것을 소유하게
 된다.

     1970년대 초에 푸시에 의해 아이젠버그 컬렉션이 개최되자
 신이 1737년산 과르네리 '코에슬러, 폴리처'와 함께 이 악기를
 구입했다.
            1993년에 바인 앤 푸시가 이탈리아의 비르투오조 우토
 우기에게 이 바이올린을 팔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르차크'는 현 소유자인 파트리시아 코제레프스키와 리차드
 보고몰니의 것이 되었다.
            - <strad> 중에서-

1742 '비에니아프스키' (Wieniawski)

            이 악기의 이름은 이 악기를 소유했던 가장 유명한 인물인
 헨릭 비에니아프스키(1835~1880)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폴란드
 의 비르투오조이며 작곡가인 비에니아프스키는 연주 활동 기간
 중 적어도 넉 대의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을 포함한 여러 개의
 악기를 소유했는데, 연륜이 쌓일수록 과르네리를 선호하게
 되는 다른 여러 바이올리니스트처럼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에니아프스키'는 이보다 2년 전에 만들어진 '이자이'와
 닮았으나, 약간 크고 모양이 있어 거친 맛이 난다. '비에니아
 프스키'는 1916에 카레사 앤프랑세의 손에 넘겨졌으며 1918년
 에는 라이온 앤 힐리를 통해 자무슬린에게 판매되었다.

            이후 미국의 수집가 존 후드손 베네트가 소유하던 이 악기
 는 1932년에 경매를 통해 팔렸다. 1948년에 에밀 헤르만은
        이 바이올린을 드 블로아 왝에게 판매했다. 이후 1957년에
 이 바이올린은 시카고의 케네스 웨렌 앤을 통해 시카고 지역
 에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편 알 두만
 에게 팔렸다. 1992년에 두만이 사망하자 '비에니아프스키'는
 바인 앤 푸시를 통해 현 소유자에게로 넘어갔으며 스트라디
 바리 협회를 통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대여
 되고 있다.
            - <strad> 중에서-

1742 '슬로안'(Sloan)

            '슬로안'은 시각적으로, 음색적으로 놀랄만한 작품이다.
            사운드 홀 패턴은 델 제수 특유의 창조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뒤판의 메이플에 깊이 드리워진 화려한 붉은 색 바니쉬
 와 정교하게 끌질된 에지(edge)는 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1950년대에 힐 앤 선즈는 영국의 유명한 수집가인 제랄드
 세젤만에게 '슬로안'을 팔았다.'슬로안'의 그 이전 역사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 악기는 1744년산 '로드 코크',
 1735년산 '매리 포르트만', 1734년산 '핫독' 등이 포함된
 세젤만 컬렉션 중의 하나였다.

            1984년에 피터 비둘프는 이 바이올린을 세젤만으로부터
 구입해서 바인 앤 푸시를 통해 현 소유자인 주디 슬로안 교수
 와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윌리암 슬로안에게 팔았다.           
            - <strad> 중에서-

1725 ex Moller
            현재 삼성문화재단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과루네기
 델제수의 현시가는 1밀리온에서 4밀리온(13억에서 50억)
 정도가 된다.


▶ 안드레아 과르네리(1626~1698)

 크레모나 집안 출신이다. 그리고 그 라틴어식 명칭인
 과르네리우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바이올린 제작자 집안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 A. & G. 아마티의 제자였는데, 구후 1641년경 N.아마티의
 제자가 되어 A. 스트라디바리 등과 함께 수업하였다. 
           
        A. & G. 아마티의 훈도를 받고 있을 무렵, 그의 작품은 대형 모델로
 만들어졌지만 그 뒤에는 오랫동 안 니콜라의 패턴으로 만들었다.
 1670년경에 그의 f자구멍은 성격을 바꾸었다. 판의 융기도 적어졌고
 소용돌이 무늬도 더욱 특징 있는 모양으로 되었다. 이것이 어쩌면
 스트라디바리의 영향을 받아 그것을 따른 것인지는 몰라도, 역시
 그의 독자적인 면 을 잃지는 않았다.  

        그의 악기 중 몇개는 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어졌지만 양호한 상태의
 것은 극히 드물다. 비올라는 3개가 알려져 있는데 그것들은 치수나
 작풍이 마치니의 것과 같다.

▶ 알바니(1630~1695)

 최초 크레모나에서 니콜로 아마티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의 악기는 대형 이 양질의 니스가 칠해져 있다. 아들도 1970년까지
 바이올린 제작을 계속 했다.  

▶ 지롤라모 아마티(II)(1649~1740)

 N. 아마티의 3남이며 부친의 뒤를 이어 바이올린 제작을 했다.
 그의 작품은 작풍 면과 소리 면에서 부친의 것에 미치지 못하였다.
 대부분 대형이며 거기에는 두 f 자 구멍의 사이가 벌어져 있고 판의
 융기는 적은 것이 많다.

▶ 알렉산드로 갈리아노 Gagliano, Alessandro(1660-1730)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제자.


▶ 쥬세페 과르네리(I)(1666~1733)

 안드레아의 차남. 델 제스와 구별하기 위하여 필리우스 안드레이
        (안드레아의 아들)라고 불렀다.
        그는 아버지 밑에서 수업하였지만 작품은 특징이 있고 몇 개는
        델 제스의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소리는 그렇게 강력하지는
        못하다.
        어떤 것은 스트라디바리의 팬턴을 모방하여들어진 것도 있다.
        그의 악기 수는 대단히 많으며 또한 작품도 우수하다. 소형이
 많고 동체 허리 부분의 폭이 좁으며, f 자 구멍은 보통 것보다
  낮은 위치에 있고 중간 부분 이 팽배해 있다. 아주 잘 만들어진
 바이올린에는 더욱 이름이 알려진 '델 제스'의 상표가 붙 었다.
 그는 또 첼로도 만들었다.
        그의 세 아들 중 피에트로만이 제작자가 되었다.

▶ 카를로 베르곤찌 Bergonzi, Carlo (1676~1747)

        바이올린 제작자의 가계로서 최초의 베르곤지.
        그는 스트라디바리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똑같은 모형을 만들었다.그도 역시 N. 아마티의 제자였다고도 한다.
 오모보노 스트라디바리가 1742년에 사망한 뒤, 그는 안토니오가
 소유한 도구와 재료들을 상속받았다. 그의 바이올린은 융기가 적은
 평평한 모델로 초기의 스트라디바리의 작품과 닮았다.
        뒤에 그는 대형 패턴을 추구하였다. 그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아름답게 완성되었지만 특히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훌륭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악기들을 지나치게 크게만들었기 때문에
 뒤에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작게 변조되어 원상태의 작품을 보기란
 극히 드물다.

▶ 쥬세페 과르네리(II)(1698~1744)

 잔 바티스타의 차남. 그러나 잔 바타스타 자신은 바이올린
 제작자는 아니 었다.
        쥬세페 1세와 구별하기 위하여 '델 제스'라고 부렀는데, 이것은
 그 의 상표에는 모두 십자가의 마크와 성인의 문자인 I.H.S
 (Iesus Homminun Sal- vator)가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A. 스트라디바리의 제자였다고도 하는데 그 자풍은 다르다.
        그의 작품은 동시대릐 어느 제작자와도 전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가 누구에게서 수업하였다고는 정확하게
 말하기 힘들다. 다만 때때로 안드레아의 아들 쥬세페의 것과
 닮은 데가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였고, 만년에는 감옥에 들어가 옥중
 에서 바이올린 제작을 하다가 그 생애를 마쳤다고도 전해 진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그 의 이름이 들어 있는, 대개 가짜라고
 생각되는 수많은 조잡한 바이올린을 설명하기 위하여 뒤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
        그의 제작 연대는 크게 나 누어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제 1기에는 한결같이 G.P.마티니나 N.아마니의 것을 모방만
 하였기 때문에 그다지 독창성을 보이지 않았다.

        제 2기에 들어와서는 소형 패텬으로 되었으며, 판의 융기도 적고
 온화한 모 양이되었다. f자 구멍은 잘 파졌고 그 모양이 상하로
  뾰족한 독특한 것이다. 또한 황색 또는 적갈색의 니스도 탄력성이
 좋고 양질이어서 스트라디바리의 것과 필적할 만하다.
        이 시기에 그는 겉판을 거의 전부 하나의 소나무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부 물들임이 지워져 버린 것도 있지만 대개 어느 판에나
        같은 물들임이 배어 있다. 동일 제목을 사용하였음이 확실히
 인저오디는 겉판 이 붙어 있는 C.베르곤지의 세 개의 바이올린이
 오랫동안 '델 제스'의 작품이라고 여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1735년 이후에는 파가니니가 사용한 바이올린 등이 제작되었다.

        제 3기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형태와 겉모양이 계속 크게 변화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항상 독창성이 있는 솜씨를 보인다.
        어느 작품이나 스트라디바리의 걸작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것들이지만 작풍 면에서는 상당히 다르다.
 대형 패턴으로 만들어졌으며 훌륭한 재료를 사용하였고,
 스트라디바리의 것보다 약간 진하고 두텁게 칠해져 있다.
 소용돌이 무늬는 색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 특징적이고 상감은
 깊이 박혀져 있다. 이 무렵의 f자 구멍은그렇게 뾰족한 모양은
 아니며 상당히 커졌다. 소리는 강력하고 부드럽고 풍부하다.

        현재 진짜 그의 작품에는 바이올린이 수십 개, 비올라가 약
 십여 개 알려져 있지만 첼로는 하나도 알려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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